우리가 살아가는데 있어 대부분의 사람들은 비슷비슷한 형태의 모임과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때때로 특별한 사람을 만나게 된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영역이나 분야를 훨씬 뛰어넘어 다방면에서 활동하는 사람이 있다.
이진우 광명시재향군인회장이 바로 그런 사람이다. 그는 방위협의회,동정자문위원회,주민자치위원회 등 일선동의 다양한 자리에서 지역발전을 위해 노력하였을 뿐만 아니라 광명시국궁협회장,광명시생활체육회장,광명시체육회수석부회장으로 광명시 체육발전을 책임지기도 하였다.
뿐만 아니라 몇 년째 철산종합사회복지관과 장애인복지관에서 배식봉사를 하며 어르신들의 마음을 보듬어드리고 있는 따뜻한 사람이다.
2020년부터는 지자체장이 체육회장을 겸직하지 못하게 된다. 생활체육회장과 수석부회장을 엮임 해서인지 체육회장으로 이름이 오르내리는 이진우 회장을 만나 그의 가치관과 삶의 방향에 대해 들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재향군인회는 어떤 단체인가
대한민국재향군인회는 군복무를 필한 모든 남녀예비역 장병들이 모여 상호간의 친목을 도모하고, 회원의 권익을 향상시키며, 국가발전과 사회공익 증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1952년 2월 1일 창립된 국내 최고, 최대의 안보단체이다. 전국적으로는 약 천만 정도의 회원이 있으며 광명시재향군인회는 25명의 이사,4명의 부회장,8명의 고문 및 자문위원으로 지도부가 구성되어 있다. 군복무와 상관없이 구성되어 있는 여성재향군인회는 봉사 위주로 활동하고 있다.
◈광명에서 가장 활동이 많으신 분 중 한분으로 평가받는데
그렇기 때문인지 정치를 하려는 것 아니냐 하는 소리를 많이 듣는데 정치는 절대 생각해 본적이 없다. 1985년 11월에 광명2동으로 이사를 와서 동대장의 권유로 방위협의회에 들어가서 활동하다 회장을 마치니 다시 주민자치위원회에서 들어와 달라고 해서 주민자치위원장까지 하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봉사한다는 것이 너무 좋아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 또 광명에서 사업을 하니 광명에 베풀어야 되는 것 아니냐 하는 생각도 있었다.
◈활발한 활동에도 긍정적인 평가를 많이 받으시는데
사람들의 평가가 그렇다면 고맙고 감사한 일이다. 2015년 생활체육회장 선거를 하면서 본의 아니게 어려움을 겪었었고, 2017년 체육이 통합되어 체육회 수석부회장이 되어 보니 밖에서는 모르는 어려움들이 있었다. 그래서 어린 직원들에게 잘해주려 노력했다. 그런 것처럼 내가 조금 아프고, 손해 보더라도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 않으려 노력한 부분, 먼저 다가가려 노력한 부분들이 좋게 평가받는 이유 아닌가 한다.
◈살아오면서 보람 있었던 일과 아픔 이었다 생각하는 부분이 있다면
보람 있었던 일이라면 우리나라 경제가 열악하던 시절인 1977년부터 1985년까지 열사의 나라 중동에 근무하면서 외화를 벌어들여 국가경제에 이바지한 부분이라 생각하며 아픔인 부분은 어머니가 세 살 때 돌아가셔 어머니에 대한 기억이 없다. 어렸을 때 어머니의 손을 잡고 다니는 아이들을 보며 눈물을 흘린 기억도 있다.
◈인간 이진우가 사람들에게 어떻게 평가받고 싶은지
다른 욕심은 없다. 사람들은 뭐하려고 저렇게 단체 활동을 많이 하고 돌아다니나 이런 생각도 하겠지만 거기에 연연하지 않는다. 진심은 세월이 가면 언제가 나타난다고 본다. 또 저를 오랫동안 봐오고 아는 사람은 저의 진심을 알기 때문에 사람들의 평가에 연연하지는 않는다.
◈이진우에게 봉사란
천직이라고 생각한다. 봉사하러 가면 마음이 즐겁다. 봉사를 하면서 항상 감사함을 느낀다. 특히 장애인복지관에 봉사를 가면 온전하게 활동할 수 있음에 감사하게 되고 자신을 돌이켜보게 된다. 또 그 아이들의 부모를 생각하면 마음이 미어지는 심정을 갖게 된다. 봉사를 하며 나 자신을 돌아볼 수 있다는 것, 그러면서 바르게 가려 마음을 다잡는 것, 그래서 봉사는 내가 얻는 게 더 많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하시고 싶은 일이 있다면
어떻게 보면 이렇게 활동하는 것도 병인 것 같다. 집에서는 이제 그만 활동하라는 소리도 많이 하지만 그게 쉽지는 않는 것 같다. 앞으로도 힘이 되는 한 수입이 되는 한 지금처럼 활동하고 싶다. 특히 로타리에 대해서는 애착이 많기에 열심히 활동하려 한다. 얼마 전에는 총재 제의도 받았지만 그건 너무 힘들 것 같아 고사했다. 지금처럼 꾸준히 봉사하면서 지인들과 함께 활동하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