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패전 70년을 앞두고 14일 발표될 아베 일본 총리의 담화에 전후 50년 담화인 무라야마(村山) 담화(1995년)에서 천명되고, 전후 60년 담화인 고이즈미(小泉) 담화(2005년)에서 되풀이된 식민지 지배와 침략에 대한 분명한 사죄와 반성이 포함될지에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우리의 눈과 귀도 쏠릴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이제 47명밖에 남지 않으신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눈을 감기 전 ‘일본 정부의 사과’를 받아 소원을 풀어 드려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 2013년 일본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 조정 절차를 신청했으나 일본 정부는 한국 법원의 권한이 일본 정부에 미치지 않는단 이유로 2년이 넘도록 피해자들이 법원을 통해 보낸 사건 서류를 반송하며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한편
12일 오후 서울 서대문형무소를 방문한 하토야마 전 일본 총리는 순국선열 추모비 앞에 무릎을 꿇고 사죄하며 방명록에 “만세운동에 힘을 다하신 모든 영혼들이 편안한 쉼이 있기를 바라고 독립,평화,인권,우애를 위하여”라고 적었다.
또 “고문이나 가혹한 처사로 목숨을 잃은 것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리고 무거운 마음으로 이 자리에 서 있다”며 진심으로 과거사를 사과하였다.
13일에는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전 일본 총리가 전쟁과 무력행사를 금지한 일본의 평화헌법 9조에 대해 "단순히 일본뿐 아니라 전 세계 평화를 위해 큰 힘이 된다고 생각한다"면서 "어떻게든 지켜야만 한다"고 밝혔다
일본 헌법 제9조
1. 일본국민은 정의와 질서를 기조로 하는 국제평화를 성실히 희구하고, 국권의 발동에 의거한 전쟁 및 무력에 의한 위협 또는 무력의 행사는 국제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으로서는 영구히 이를 포기한다.
2. 전항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하여 육해공군 및 그 이외의 어떠한 전력도 보유하지 않는다. 국가의 교전권 역시 인정치 않는다.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며 교전권을 인정하지 않는 헌법 제9조는 평화헌법이라 불리우게 되었고 노벨 평화상 후보로 두 번씩이나 추천되었다.
이렇듯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다시 그러한 잘못이 되풀이 되지 않게 하려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에 아베 총리처럼 끊임없이 주변국의 아픔을 헤집어 놓는 정치인도 있다.
우리의 역사에 있어 일제의 침략으로 수탈당한 역사는 결코 지워지지 않는 상처로 각인되어 있고 다시는 되풀이 되지 않아야 할 치욕의 역사이다.
광복 70주년을 일주일 앞둔 지난 8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박유년 할머니가 향년 9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는 등 해가 갈수록 평균 연령이 높아지며 고령의 위안부 피해자들의 생사를 장담하기 어려워지고 있다.
지난해 8월 기준 88.4세였던 위안부 피해자들의 평균 연령은 올 8월엔 89세로 높아지는 등
공식적으로 70대 생존자는 2013년 이후 단 한 명도 남아있지 않다. 전체 생존자 47명 중 절반이 넘는 25명이 85~89세에 분포해있다. 90~95세도 15명이나 된다.
고령의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남은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 더욱이 지난 1월 황선순 할머니의 사망을 시작으로 올해만 벌써 8명의 피해자가 숨을 거뒀고 최근 5년 사이 사망자는 36명에 달한다.
우리의 의무는 일본 정부의 진정어린 사과를 받아 위안부 피해자들의 응어리진 가슴의 한을 풀어드려야 하는 것이다.
광복 70주년을 맞아 여기저기서 요란한 행사를 하고 위로를 전하지만 진정으로 그 분들의 마음을 헤아리고 위로하는 것은 우리가 올바른 역사관과 주체성을 가지고 자신부터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야 하는 부분도 있다.
해마다 광복절이 다가오면 친일파 후손의 떵떵거리는 삶과 독립운동 후손의 극빈한 삶이 대비되어 요란하게 떠들지만 그 시간이 지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잊혀 진다.
또 어느 국회의원이 조부의 친일행적에 대해 공개 사과했듯이 광복 70년이 되었지만 해방 이후 청산하지 못하고 묻혀버린 친일의 잔재는 두고두고 우리의 발목을 잡고 있다.
광복 70주년을 맞아 광명시에서도 각계각층의 성금을 모아 제작한‘광명평화의 소녀상’ 제막식을 8월15일 광명동굴 앞에서 거행한다고 한다.
‘여성인권과 평화의 상징이며 역사교육의 장이 될 광명평화의 소녀상을 일제강점기 자원의 수탈 현장이며 광부들의 땀과 애환이 서린 광명동굴 입구에 세운다’라며...
맞는 말일지도 모르겠지만 누군가의 말처럼 “수탈현장에 위령탑을 세우는 게 먼저 아닌가?”라는 말이 귓가를 맴도는 건 무엇 때문일까?
털어야 할 때 털지 못하고 사과해야 할 때 사과하지 못하면 두고두고 원죄처럼 따라다니며 발목을 잡을 수도 있음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