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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사회의 조그만 등불이 되고 싶다.

소리없는 기부로 세상을 밝히는 국제인터내쇼날(주) 김영면 대표이사

우리가 세상을 살다보면 어떤 사람은 자신을 멋지게 꾸미는 과대포장으로 과대평가를 받기도하고 어떤 사람은 포장을 할 줄 몰라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것보다 훨씬 적게 평가를 받기도 한다. 경쟁의 사회에서 어떤 방법이 옳다 확정지을 수는 없지만 자신의 그릇만큼 제대로 평가받고 인정받는 사회가 진정 아름다운 사회일 것이다.

누구나 똑같이 먹어가는 나이이고 내딛는 발걸음이지만 어떤 발걸음에는 찬서리가 가득하고 어떤 발걸음은 훈기로 가득하기도 하다. 여기 내딛는 발걸음을 훈기로 채워가고자 노력하며 소리 없이 남들의 빛이 되어주고 있는 사람이 있다.

국제인터내쇼날(주) 김영면 대표이사는 일년이면 바르게살기, 새마을, 교회와 지역사회에 천여만원을 청소년을 위한 장학금으로 기부하고 있다.


돈을 벌기보다 쓰기가 어렵다는 말이 있다.

소리 없이 사회의 등불이 되고 있는 김영면 대표를 만나 그의 삶을 들어 봤다.


#.돈을 번다고 다 기부를 하는 것은 아닌데 꾸준하게 기부를 하는 이유는

쌀가게를 하는 집에서 태어나 유복하게 자랐으나 초등학교 때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아버지가 재혼하시면서 어렵게 학창시절을 보냈다.

초등학교 때는 농구, 중학교 때는 육상을 하면서도 나름 공부를 잘해서 목포고에 진학하고 싶었으나 아버지의 권유에 기계공고를 갈 수 밖에 없었고 고등학교 2학년 때는 아버지가 2명의 형들과 목포에 남겨 놓고 서울로 이사 가셨는데 생활비와 학비를 보내주지 않아 정말 어렵게 학교를 다녔다.

친구집에 6개월을 얹혀살기도 하는 등 어려운 상황에서 대학에 진학할 처지가 되니 못했으나 다행히 책값 24,000원만 내고 전액 입학 장학생으로 인하공대 기계과에 진학하게 되어 쉽지 않게 대학을 졸업하게 되었다.

그때부터 ‘돈을 벌면 어려운 학생들을 도와야 겠다’ 또 우리 사회가 최소한 “학생들이 돈 때문에 자신의 희망을 버리는 상황이 만들어지게 해서는 안된다” 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특히 중고생들은 아직 자신의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공적부분보다는 사적인 부분에서 장학재단 등이 활성화되어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광명에 정착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지금의 아내와 만난지 6개월만에 결혼을 하게 되었다. 아내는 소녀가장의 역할을 하느라 모아 놓은 돈이 없었고 저도 저축해 놓은 돈이 없는 상황에서 결혼을 하게 되었다. 없는 돈에 신혼집을 찾다 보니 재개발 지역에 언제든지 나가라고 하면 나가는 조건으로 보증금 없는 월세15만원에 살게 되었다. 2~3년은 살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6개월만에 쫒겨나는 상황을 맞게 되었고 부족한 자금에 맞는 집을 찾다보니 광명에 오게 되었는데 돈이 부족하여 아내가 열 번은 넘게 광명4동에 있는 부동산을 쫒아 다니고 설득하여 광명4동으로 이사 오게 되었다.


#.공대를 나온 것으로 알고 있는데 엔지니어가 아닌 무역을 하게 된 이유는

대학에 가서는 열심히 공부를 해야겠다고 생각을 했는데 입학때는 전두환 정권시절이었고 복학후에는 노태우 정권시절로 대학내 민주화에 대한 열망이 대단한 시절이었다.

대학3학년 2학기부터 졸업때까지 1년반동안 공대 학생회장을 하면서 수업에 들어가지 못하고 공부와 동떨어진 생활을 하다 보니 졸업할 때쯤 취직한 회사가 밸브를 생산하는 중소기업이었다. 들어간 회사에서 영업을 하게 되었고 영업을 하며 알게 된 거래처 사장이 ‘영역을 확장하고 싶은데 자금을 지원해 줄테니 회사를 차려 운영해봐라’ 해서 94년 10월 돈을 하나도 들이지 않고 무역회사를 창업하게 되었다.

돈을 들이지 않고 해오던 일을 계속해서 하는 사업이라 아내도 반대를 하지 않아 쉽게 시작했다.

그전부터 해오던 일이라 자신감도 있었지만 95년부터 본격적인 사업을 하여 지난 22년동안 손해를 본적이 한번도 없었다. 단지 재무재표상 딱 한번의 마이너스가 있을 정도로 잘 될 수 있었던 이유는 건설회사.발전소.석유화학단지 등에 학교 선후배가 많이 포진하여 도움을 주었고 새로운 거래처를 확보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한 덕분이다 .


#.바르게살기광명시협의회,경기도볼링협회,광명시볼링협회장 등 많은 활동을 하는 이유는

그것 때문에 정치를 하기 위해서 그러는 것 아니냐는 오해를 받기도 하는데 어느 날 ‘왜 돈을 벌까’ 라는 생각을 하며 언젠가 사회봉사활동도 하여야지 하고 결심했다. 모든 활동이 어느 정도 사업이 괘도에 오른 다음에 시작한 것이다. 봉사 활동의 일환으로 사회활동을 하고 있지만 의도적으로 하려고 한 것은 아니다.

광명시볼링협회 회장도 공석인 상태에서 시작했고 광명시볼링협회장 1년 만에 경기도볼링협회장이 공석이어서 하게 되었다. 바르게살기도 공석이어서 시작했다. 내 자신의 의지보다는 아무래도 돈이 들어가야 하니까 주변에서 추천을 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다른 정치인의 선거를 많이 도와준 걸로 아는데 이유가 있나

인하공대 학생회장을 하면서 정치권에서 콜을 받고 유세장에, 벽보붙이는 일 등 정치에 관심은 있었다. 나중에 돈을 벌고 안정 되었을 때 가정에 피해를 주지 않을 수 있을 때 해봐야 겠다. 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2002년 열린우리당 철산2동협의회장을 맡게 되면서 관심을 가졌고 도의원 후보에 거론되었지만 경선 전 문해석 의장에게 양보하고 나상성 현 의장이 사무장을 해달래서 전담은 못하지만 도와주겠다 했고 3주정도 매일 출근하면서 사무장 역할을 했다.

그 다음 선거에서는 도의원 예비후보로 등록 후 활동 했으나 김경표 전 도의원과 불공정한 경선으로 경선에 패한 후 이준희 전 시의원이 선대본부장을 해달라. 해서 친하게 지낸 관계로 선대본부장은 못하겠지만 도와주겠다. 하고 열심히 도와줬고 2-나 가 당선되는 기록적인 역사를 만드는데 일조를 했다. 그후 의장을 하면서 시민들에게 피해를 주는 좋지 않은 소리가 많이 들려 도와준 일에 대해 많이 후회를 하였다.

수차례 선거를 도운 이유는 친분도 있지만 광명시민들이 좀 더 행복해 지기 위해서는 지방자치가 올바로 서야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새정치민주연합 소속인걸로 아는데 지난 지방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한 이유는

도의원 예비후보 등록 후 올바른 경선을 통해 도의원 후보를 결정하는 것이 바른 길인데 경선을 실시하지 않고 선거전 학력위조로 이미 고발된 후보를 공천하는 것을 보고 새정련은 희망이 없다고 생각했다.

경선을 실시하지 않은 이유 또한 특정 정치인인의 총선과 관련하여 말도 안되는 해당행위라는 굴레를 씌워 배제하였다. 이런 이유와 더불어 이준희 전 의장이 의장을 하면서 지역지에 보도된 것처럼 좋지 않은 소리도 많이 들렸기에 광명시민들이 올바른 후보를 선택할 거라 믿고 출사표를 던졌다.

정치는 정의가 올바르게 서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불의가 정의를 이기는 건 옳지 않다. 잘못된 것은 심판을 받아야 한다 생각했다.

그래서 지금까지 바람몰이로 정치를 했다면 이제부터는 공약으로 승부를 하자 생각 했고 선거를 통해 내가 가진 것을 지역에 돌려주고 싶었다.

즐겁게 선거를 했고 끝나고도 행복했다.


#.앞으로 정치를 할 생각인가 한다면 어떤 정치를 하고 싶나

정치하는 사람들만의 오류에 빠져있지 않고 지역의 사람들과 소통하는 정치를 하고 싶다. 정치를 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제대로 걸러내 시민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사람이 정치를 하는 풍토가 되어야 한다.

지금까지는 납득하지 못하는 공천을 했다.

정치 신인이 나올 수 없는 열악한 환경을 바꿔야 한다.

또 출세를 위한 정치를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정치를 하고자 하는 이유는 개인의 한계를 느꼈고 그 한계를 정치로 풀어갈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럼으로써 많은 사람을 행복하게 할 수 있는 것이 정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지방 선거 당시 무상교복 등 공약이 파격적이었는데 그런 마음에 지금도 변함이 없나

의무교육이면 국가가 책임져야 하는데 지금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중학교는 등록금만 의무교육이다. 교복 같은 경우 학부모들이 공동구매를 추진하지만 한계가 있다.

학부모의 교복 공동구매보다 전체 학생을 대상으로 공동구매 한다면 반값으로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자체가 예산이 없다면 기부금으로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부분이다.

또한 세비를 지역사회에 환원하는 것은 다행이 도의원 같은 경우는 겸직이 허용되고 저는 사업을 하면서 1억이상 연봉을 받고 있으니 세비는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는 것이 맞다.

물론 기부행위에 해당한다고 하겠지만 공익재단에 맡기는 등 방법은 찾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정치를 하고자 하는 사람, 또는 시민의 한사람으로서 광명시의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그 사람들은 자신이 왜 정치를 하는지 되돌아봐야 한다. 지역위원장이나 국회의원에 잘 보여서 공천을 받고 의원이 되었지만 수준미달인 사람이 많이 들어와 있다.

도덕적인 면 등에서 의회를 움직여갈 역량이 부족한 사람들이 들어와 작금의 광명시의회의 문제가 발생 했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시민들이 받는다.

시민들 앞에 당당 할 수 없다면 각성하고 물러나야 한다.

그게 정치인으로 가져야 할 기본품성이라 생각 한다.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하는데 그 정도의 책임도 못지는 사람들이 무슨 정치인이냐.

남 탓만 하고 있는 걸 보면 시민들이 불쌍하다.

전원사퇴하고 광명시의 발전을 위해 새롭게 뽑아야 한다고 본다.

또한 도박으로 인해 사퇴한 시의원을 뽑은 을지역의 시의원 보궐선거, 허위학력으로 도의원 보궐선거를 실시한 갑지역을 보면서 제대로 된 정치인이 시민을 위해 나서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삶을 어떻게 살아야한다고 생각하나

치열한 경쟁의 사회이지만 역설적으로 혼자살수 있는 세상이 아니고 이웃과 더불어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다. 서로가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누군가 작은 밀알이 되어야 한다.

혼자 잘살기는 쉽지만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이 되어야 진정 좋은 사회라고 본다. 그래서 출소자들과 함께 하는 ‘함께 가는 세상’의 활동을 하고 있고 가까운 곳에서 부터 함께 잘 살시 위해 회사 직원들의 급여도 대기업 수준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맞혀주려 노력하고 있다. 소외된 사람을 보살피는데 아내도 전적으로 동참하니까 앞으로 장학재단과 새로운 교회를 만들어 가출청소년이나 갈 곳이 없는 사람 등 어려운 사람들이 생활할 수 있는 쉼터를 제공하고 싶다.

내년부터는 회사 이익의 10%정도를 이웃에 기부하는 계획을 갖고 있다.


사람은 겪어봐야 알 수 있다는 말이 있다.

겉보다 내면이 따뜻한 남자 김영면 대표이사의 앞길이 환하길 빌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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