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우체통
고 희 숙
갈래머리 두 볼 정원에
여드름꽃 피던 시절
높은 하늘 넓은 땅 채우고 남는 사랑을 향해
편지를 썼다네.
먼지 쌓인 다락방에서
홀로 긴 밤의 백열등 태워
굳은 손 호호 불며 펜으로 잉크를 녹였지.
행여 미소가 잊혀 질 새라
피아노 건반을 흔들듯 쓰고 지우며
흰 편지지 위에 철쭉보다 화사한 별빛을 담았네.
벽에 걸린 시계추 고개가 흔들린 만큼
쓰고 지워진 화선지가 첩첩이 쌓여
아침이 눈 뜰 때 쯤
나른한 펜을 놓았네.
‘한 사람을 향한 글’
남들은 유치하다고 여길지 모르겠지만
절대 유치하지 않았다네.
소녀는 글을 쓰면서 밤새 행복 하였기에
갈래머리 두 볼 정원에 철쭉꽃처럼
여드름 피어나던 시절의 초상을
빨간 우체통은 기억하고 있을 거야.
마지막 입김으로 뽀뽀하고 띠워 보낸
젊은 베르테르의 초상 같은 편지와
블랙홀에 빠져 답장 없이 사라져간
잔잔한 사연들을ㆍ ㆍ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