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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어느 탈북민의 새로운 희망의 층계 쌓기!

나에게 희망의 디딤돌, 마부위침학당

북한 김정은 정권의 북핵 무력시위로 촉발된 일촉즉발의 긴장상황으로 한반도가 다시 한번 세계의 주목을 받는 가운데 사태는 해결의 기미를 보이지 않고 더욱 임계치를 향해 다가가고 있는 형국이다.

하지만 그것은 북한 정권을 쥐고 있는 김정은이 자신의 정권을 지키기 위해 하는 놀음이고 북한 주민이 우리의 동포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아직도 많은 실향민들이 두고 온 북녘의 부모형제를 그리워하고 있고, 경제적으로 나은 상황을 위해, 핍박을 피해, 자유를 찾아 남한으로 오는 탈북민이 줄을 잇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그러나 탈북민이 3만을 넘어서고 정착금이 감소하면서 탈북민들의 남한생활은 그리 녹녹하지가 못하다. 조사에 의하면 탈북민의 상당수가 저임금과 불안한 고용 상황에 있으며 실업률은 12%를 웃돌아 일반 국민의 3배에 달했고, 그나마 일자리를 구한 경우도 절반은 임시직.일용직처럼 고용의 질이 낮은 직업을 가져 탈북민 3명 중 1명은 월소득이 100만원도 안 되는 것으로 파악됐다.

 

팍팍한 남한 생활에도 자유를 찾아온 그들은 자신의 환경에 굴하지 않고, 인간다운 삶을 살기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 여기 수많은 역경을 뚫고 남한으로 내려와 자신의 꿈을 위해 노력하는 한 탈북민이 있다.

북한에서 일찍이 고아가 되어 주민등록이 없는 무적자로 살아왔으며 인간다운 삶을 한번도 살아보지 못하고 남한으로 탈북한 남한생활 6개월 차의 김영실씨이다. 그녀의 기구한 사연을 들어 보기로 했다.

 

김씨는 9살 때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여동생은 6살에 굶어죽고, 남동생은 3살에 헤어졌으며, 9살에 고아원 들어갔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14살에 나왔다고 한다.

이후 친할머니 집이 가까운 바닷가에 천막을 치고 숙식하면서 갯지렁이, 조개를 잡아 팔며 생계를 유지하다 돈을 조금 모아서 신의주에 있는 신발공장에서 신발을 띠어다 비료를 운반하는 화물차를 얻어 타고 다니며 배낭 행상으로 신발을 팔았단다.


그러나 호사다마라고 신발장사해서 모은 돈을 사기당하고 망연자실해 있는데, 장사하면서 만난 아는 이모가 이 고생하지 말고 시골에 아들이 살고 있는데 자기와 같이 시골 가서 마음 편하게 살자 해서 완전 골짜기로 갔는데 아들은 전기에 감전되어 정상이 아니었고 일할 사람이 없어 나무도 하고 약초도 캐고 혼자서 먹여 살리는 생활을 하다 29일 눈이 하염없이 오는데 나무해오라 해서 무조건 도망 나왔다.

무작정 눈길을 걸어 정성이라는 곳까지 왔고, 저쪽을 건너가면 중국이라는 이야기에 철조망을 넘어 중국으로 넘어왔는데 넘자마자 총을 겨누며 손들라는 소리에 손을 들고 뒤를 보니 어떤 아줌마가 있었다.

그 아줌마를 데리러 온 사람들이었다. 아줌마는 우리를 만난 게 복이다. 공안에 걸리면 다시 북한으로 가야 한다며 차에 태우고 한참가다 차를 세우더니 말도 모르고 여기서 잘못하면 다시 북한으로 가야 한다. 어떡할래해서 하라는 데로 하겠다했더니 국경 가까운 곳의 혼자 사는 남자에게 팔았고 그곳에서 9년을 살았다. 계속 달아나고 싶었지만 바깥세상을 전혀 구경할 수가 없었다. “도망가지 않을 테니 자유만 달라했고 그렇게 하기로 했다. 그곳에서 일도하고 돈도 벌었지만 신분이 없으니까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


그래서 한국으로 가야겠다 생각했고, 마침 우연히 인터넷으로 알게 된 먼저 탈북한 언니가 한국으로 오라 오면 자기가 잘 해주겠다고 해서 라오스와 태국을 거쳐 한국으로 왔다.

신분이 없는 불법이니까 라오스쪽으로 9시간에 걸쳐 산을 넘었다. 얼마나 기고 걸었는지 손톱과 발톱이 다 빠질 지경이었다. 브로커들이 제공하는 조그만 쪽배를 타고 태국 악어강을 건너 왔다. 태국에 도착해서 경찰에게 자수했다.

잘못하면 북한 대사관에 넘기는데 브로커가 종이를 주는데 한국대사관으로 보내 달라는 표식이 있었다. 경찰서에 이틀 동안 있다 재판을 받고 국제수용소로 옮겨 한달 정도 있다 한국대사관에서 데리러 와 남한으로 오게 되었다.

 

이후 조사 과정을 거쳐 하나원에 가는데 까지 6개월이 걸렸는데 주민등록이 없다보니 다른 탈북자보다 조사 기간이 길 수밖에 없었다. 조사 후 배치 받아 남양주로 갔고 생계를 위해 이것저것 알바도 했으며 알바천국 같은데도 두드려 봤지만 새터민이라고 안 써줘서 취업이 어려웠다. 더구나 초등학교 졸업만 겨우 마친 상태이기 때문에 더더욱 갈 곳이 없었다.

그래서 살면서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공부를 해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검정고시 공부하는 곳을 찾게 되었고 남양주에서 공부할 수 있는 곳을 찾아 봤더니 의정부 쪽에 있는데, 낮부터 하는 곳이 많아서 갈 수 없었다. 낮에는 생계유지를 위해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니까.

마침 전에 마부위침 학당에서 공부하고 합격한 친구가 이곳을 이야기해서 찾아오게 되었다. 일주일에 5일을 공부하러 오는데 왕복 4시간이 소요되지만 전혀 힘들지 않다. 선생님과 1:1로 공부를 하니까 너무 좋다. 훈장님께서 교과서 값을 무료로 해주셨을 뿐만 아니라 때로 식사도 사주고 차비도 주고 시장보라고 돈도 주는 등 너무 잘해주신다.

북한에서 고아로 자라 먹고사는 것 이외의 다른 생각을 해본 적이 없지만 남한에 와서 어떻게 사는 것이 인간답게 사는 것인지 알았다. 지금은 어떤 다른 목적보다 먼저 지식을 쌓아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마부위침 학당은 나에게 희망의 디딤돌이다.’

 

한편, 마부위침학당은 이러 저러한 사정으로 배움의 시기를 놓친 시민들에게 문호가 활짝 개방되어 있는 곳으로 강신재 훈장을 비롯한 여러 자원봉사 선생님들이 자신들이 가진 재능을 배움에 목마른 사람들을 위해 정성껏 베풀어 주고 있으며, 배움을 위한 시민들에게는 언제든지 문이 열려있는 학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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